예술의 전당-낯설고도 품위 있던 공연장

예술의 전당은 이름에서 풍기는 고급스러운 향기가 있다. 예전부터 ‘예술의 공연’이라는 장소는 우아하고 가진 자들이 문화를 즐기는 장소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예술의 전당’에 대한 나의 인식 때문에 공연장에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공연 당일 그럭저럭 차려입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 로비에 도착했을 때 받은 느낌은 온갖 정장, 코트를 입고 온 클래식에 대해 알고,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낯선 환경에서 순간 기가 죽었지만 나도 나중엔 내 위치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어 이런 문화를 즐기러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시간이 되어 드디어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예매한 자리를 가장 가격이 저렴한 3층이었다. 공연장은 역시 생각했었던 만큼 웅장하였다. 많은 관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3층 가량의 관객석, 넓은 무대가 거대하게만 느껴졌다, 그 무대 뒤편에도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채취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좌석이 존재하였던 것이 인상 깊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이용해 보고 싶은 좌석이었다.

시간이 다가오자 악기 연주자들이 하나 둘씩 나와서 자신의 악기를 시험 삼아 연주하였다. 이런 공연을 처음 오는 나는 모든 연주자들이 ‘블랙 아웃’ 상태에서 한 번에 나와 자리에 착석 할 줄 알았으나 자유롭게 나와 자신의 무대를 체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하나 둘씩단원들이 나와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고, 마지막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등장하고 단원들을 정비시켰다. 이내 지휘자와 피아노 연주자가 나와 제1바이올린 수석에게 악수를 청하고 단원들을 관객에게 인사시켰다. 웅장한 관객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d단조

처음 연주되었던 곡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d단조였다. 드디어 눈 앞에서 보는 첫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그 강인한 첫 인상은 지금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초반 부분에 바이올린 선율이 주로 이루어졌는데 연주자들이 동시에 상승했다 하강하는 움직임이 실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바이올린 뿐만 아니라 첼로, 비올라 연주자들도 마치 한 몸과 같이 움직이는데 눈 앞에서 보니 혼연일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공연 내내 피아노 연주자와 지휘자에서도 눈길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정, 정열’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머릿속에 맴 돌았다. 지휘자의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 그러면서도 카리스마로 전체 악단을 이끄는 모습이 듬직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절제가 있었으며, 경쾌하고 가벼운 선율이 나오는 파트에서는 정말 사뿐사뿐 한 마리의 새처럼 날갯짓을 하여, 지휘자의 모습만 보고도 절로 흥을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 연주자의 화려한 손놀림은 멀리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영혼을 불사 지르는 듯한 연주가 피아노의 대가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음악에 빠져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무대를 즐기는 모습에서 진정한 음악인의 자취를 느낄 수 가 있었다. 이 곡에서는 음악보다는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집중하여 오케스트라의 기본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 또 생소하게 다가온 점은 1부가 끝난 후 우렁차게 터져 나오는 박수 갈채였었다. 지휘자와 피아노 연주자가 인사를 하고 들어갔는데 다시 한 번 나오는 것이었다. 다시 나와 바이올린 수석을 일으킨 다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바이올린 수석이 먼저 앉은 다음 단원들이 따라 앉았으며 또 한 번 지휘자가 나와 인사를 하였다. 이 과정을 두 세 번 반복하는 것이 원래 문화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1부가 끝난 후 박수갈채를 보낼 때 다른 관객들의 눈치를 보가며 나의 진심을 담은 박수를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커튼콜에 대해 또 하나 기품 있는 매너를 하나 배운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였다. 이처럼 나에게 낯설고도 신기한 경험을 선사한 채 1부가 마무리 되고 있었다.

홀스트의 모음곡 <행성>

오케스트라 공연의 문화를 한 번 숙지하였기에 두 번째 곡 <행성>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제1곡 화성에서는 도입부부터 눈길을 끌었다. 현악기들의 절제된 연주와 타악기들의 연타로 소리가 풍부하게 들렸으며 강렬한 리듬이 압도적이었다. 비장미와 긴장감이 계속 넘쳐 흘러 마치 전쟁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고, 제 1곡이 끝나고 나서야 온 몸의 긴장이 풀려 큰 날숨을 내 뱉었다.

제 2곡 금성부터 제 3곡 수성은 비교적 온화하고 안정된 흐름으로 곡이 흘러갔다. 그러면서도 물고기들이 물가 위로 경쾌하게 뛰어오르는 듯한 명량한 음색과 선율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뿐사뿐 나의 발이 리듬을 맞춰가며 연주를 감상하였다.

제4곡 목성에서 다시 제 1곡 화성과 같이 귀를 사로잡는 리듬감이 있었다. 통쾌하면서도 호쾌한 음향이 마치 야구장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장의 분위기를 연상시켜 축제 분위기를 언뜻 느낄 수가 있었다. 많이 익숙하다고 느껴 자료를 찾아보니 ‘MBC 뉴스 시그널’도 쓰이고, ‘SF영화의 OST’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귓가에 계속 아른거려 1곡 화성과 함께 집에 와서 수 없이 많이 들었다.

제 5곡부터 7곡까지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어디에서부터 들려오는 여성 합창단의 소리였다.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으며, 소리의 근원을 궁금하게 만들었었다. 이렇게 녹음된 소리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더욱 풍부하게 해줄 수 있음을 알 수 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우주의 신비를 표현해주는 듯한 선율과 친숙한 종소리와 오르간의 연주와 함께 은은한 느낌을 주며 곡이 마무리 되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커튼콜의 시간이 있었다. 이번에는 보다 능숙하게 오케스트라 공연에 익숙한 신사처럼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박수 갈채를 자연스럽게 보내주었다. 멋진 공연과 잊지 못할 첫 경험을 선사해 준 KBS 교향악단에 깊은 감사를 느껴 온 몸을 다해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을 주었다. 가을 밤, 음악적으로 한층 성숙해져 가슴이 따뜻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

처음 보는 오케스트라 공연이었고 아름다운 곡, 화려한 곡을 듣게 되어 깊은 인상과 만족을 얻고 공연장을 남았다. 아쉬웠던 점은 무대가 아닌 관객들의 문화수준이었다. 내 또래의 젊은이들은 단순히 과제를 목적으로 공연장을 방문하는 듯 했다. 공연 중간에 몰래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였으며, 제 1부 브람스의 곡이 끝난 후 대거 자리를 떠난 모습을 보였다.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 좋은 음악과 공연을 부차적인 이유로 방문한다는 아직은 젊은이들이 음악을 즐길 여유가 없는 사회가 이번 공연을 통해 너무나도 안타깝게 다가왔다. 음통세 수업을 통해 나름 서양음악에 대한 정이 생긴 나로서는 젊은이들이 각박한 세상 속에 편히 클래식과 오케스트라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하나 생겼다.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담임선생님을 필두로 해서 공연장을 찾아 왔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문화를 접하고 교양을 쌓는다는 점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그러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부러움이 있었다. 하지만 공연 내내 휴대폰을 만지며 잡담을 하여 많은 이들이 공연 중간에 한 마디씩 주의를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연예절을 가르치고 예의를 몸에 익히도록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의 문화예술을 즐기는 데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김희연 기자  bodo@emone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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