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육·과학 문학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Op.61"
신승우 기자 | 승인 2017.09.08 13:42

한동안 교향곡을 듣고 그 웅장함에 매료되어 수시로 감동을 느끼는 기쁨에 푹 빠져있던 본 기자는 곡에 대한 교과서적인 지식을 언제나 FM라디오를 통하여 얻어내곤 하였었다.
 
FM라디오? 비교적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때의 FM라디오는 국외에서 유행하는 유명한 팝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거나, 밤을 지새며 젊은 시대의 갖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매체였다.  한때, 참 자주 들었었고, 그 자체로써 문화를 형성하던 때가 있었다라고나 할까? 
 
아뭏튼 이런 다양한 음원을 제공하는 방송들과는 달리, 그 분위기가 일년 내내 사시사철 변하지 않고 늘 똑같이 규격화된 방송을 하는 곳도 있는데, - 지금도 그렇지만, - 유난히도 침착하고 단아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고전음악을 들려주는 FM방송을 듣곤하였던 기억이 난다.
 
FM라디오에서 클래식음악을 듣고자하려면 오직 한 주파수에만 고정을 해 놓고 있으면 되지 않은가?  바로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93.1Mhz KBS FM이다. 흔히 듣는 주파수나 방송국이 아닌 잘못 실수로 이 KBS KM으로 손이 가게 되면 늘 언제나 나즈막한 못소리에 마치 차분하게 뉴스를 진행하는 듯한 목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나오면서 길게는 30분 짧아도 20분이상의 지루하고도 매우 졸리는 듯한,,더우기 잘 알지도 못하는 고전음악을 들어야 하는 데. 

또 다른 얘기이지만, 이 KBS FM의 클래식음악방송의 분위기를 지금 생각해도 참 묘한것 같다. 묘하다고 표현해서 좀 그렇지만, 뭐, 기묘한 것이 아니라,,  뭐라고 표현을 해야하나? 마당에서 실컷 떠들고 뛰어 놀다가 어쩌다 집안으로 들어와 안방으로 들어가면 흠칫, 가구며 방안에 놓여 있는 모든 사물들이 잘정돈 되어있는 조용한 분위기속에 어딘가에서 모를 분첩향기가 스며나오는 듯한, 그래서 잠시나마 발뒷꿈치를 들고 몰래 방에서 빠져나올때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지금도 어쩌다 KBS FM을 듣게 되면 일단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뉴스를 중저음으로 조용조용히 진행하는 듯한 목소리의 아나운서 멘트를 들어야 한다. 너무 조용한 가운데 멘트가 이어져 자세하게 들으면 진행자의 숨넘어가는 소리나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인듯하고, 분위기는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하여간 다른건 몰라도 일단 주변을 정화하거나 분위기를 다운시키는 것같은 느낌이랄까?
 
하여간 얘기하고픈건 이게 아니다. 그 언제 였던가?
 
오래전 그 어느날 바로 그 시절에, 이 젊잖은 FM라디오의 한 고전음악 프로그램에서 나의 귀를 잠시 스쳐지나 듯 들었던 고전음악의 한 부분 한소절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고 오랫동안 맴돌게 하였던 곡이 있었으니...그 이후로 어느기간동안 - 간간히 - 이 곡의 제목과 작곡자를 알기위하여 수시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소박한 기억속에 머물게 하였던 곡...바로 오늘부터 얘기하고자 하는 베토벤선생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인 61번 작품이다.
 
오래전 귀를 설레게하며 원곡을 찾아 헤메게 만들었던 추억을 가져다 준 이 곡은 한마디로 대규모 악단과 바이올린 연주자가 협연을 하는 다수의 곡들중 가장 빼어난 곡으로 세대를 달리하며 연주자와 감상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칭송을 받아온 명곡중의 명곡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런 명제하에서 단순논리가 아닌 제법 신중을 기한다는 논리로 얘기해 보아, 일견, 다수의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바람직한것은 군더더기를 배제해버리고 간단하고도 직관적으로 결론을 내려버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를들어 동서고금의 3대 바이올린 협주곡, 4대 바이올린 협주곡등등,,호사가들이 붙여놓은 명곡 리스트 테두리안에서 이 곡을 논해야되는가 말아야하는가? 하는 방식으로 이 작품이 이해되어야 한다던가, 혹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Op.61" 이 최고의 반열속에 오랫동안 각인되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과는 별도로 개별적인 감상의 틀에서 얻을 수 있는 느낌과 구분하는 인위적 잣대로써 이 곡의 명성과 작품성을 이해해야 하는 것등등, 어떠한 것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즉, 간단명료하고도 명백하게 말할수 있는 것은 이 곡은 "최고중의 최고" 라는 것이다.
 
이 곡에 대한 칭송이 세대를 달리하여왔다는 얘기를 하였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맞는 말은 아니다. 당대 비평가들은 이 곡이 탄생할 때 쯤에 처해있던 베토벤의 삶에 대한 풍부한 예찬과 기쁨을 숨기지 않았던 감정과는 정 반대로 이 곡에 대한 혹평을 서슴치 않았었다. 이 곡이 탄생될 때 만큼은 돈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경제적관념으로  작품에 매달리지 않았던 베토벤에게 이런 비평은 사실상 반가울리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평가절하되는 곡에 대하여 미련을 두거나 세상을 원망해야할 만큼 비관적이거나 절박한 시절도 아니였던 것 같다.
 
결국, 이러한 당시의 분위기 덕분에 이 곡은 작곡되어지고 난 후, 무려 반세기동안을 세인들과 유리된 채, 오선지 안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어야 했다. 오랫동안 기억속에 지워져 있었던 곡이라는 것, 덕분에 늘 이 곡에 대하여 얘기를 할때는,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된 일련의 계기들과 그 주인공들이 이야기속에 늘 회자되곤 한다.
 
하여간, 지금은 이러한 주변사가 지금 얘기해야할 것들로써는 그 다지 큰 관심거리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세인들에게 다시 알려지고 난 이후, 이 곡에 대한 평가가 항상 같았다는 것이다. 즉, 늘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고 그 명성에 맞게 조금도 퇴색되지 않을 정도의 기쁨과 감동을 언제나 듣는 이에게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의 목록에 항상 존재하여 왔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Op.61" 의 제 1 악장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한 소절이다. 1악장에서 이 소절은 반복과 더불어 곡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회귀적 틀을 구성하고 더불어 중심과 뼈대를 이어주는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하였던 바, 나의 귀를 붙잡게 하였던 한 부분이기도 하며 최초, 한때 잠시나마 " 이 교향곡이 대체 누구의 곡인가?" 라는 지금으로써는 다소 황당한 의문에 잠시 머물게 하였던 추억을 만들어 낸 음절이기도 하다.
 
정말 짧은 시간의 소리이겠지만, 반복하여 감상하여주길 소망한다. 
이 부분을 듣고 귀에 익숙해진다면,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Op.61" 과 친숙해 질 수있는 계기가 마련이 될 것이고, 더불어 나의 소견이지만, 1악장에서 약 30% 정도는 이미 듣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승우 기자  bodo@emoneynews.co.kr

<저작권자 © 이머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승우 기자 bodo@emoneynews.co.kr
서울 지역과 정치부를 담당하는 신승우 기자입니다

신승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엔케이디미디어  |  사업자등록번호 : 106-88-00193  |  대표전화 : (02)543-2949  |  팩스 : (02)6455-2078
서울시 서초구 서초중앙로 8길 24 서초 카라얀타워빌딩 6층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아 03922  |  창간일 : 2009. 7.24   |  기사 발행일 : 2009.7.24  |  등록일 : 2015.10.5
발행인 : 심지현  |  편집인 : 권병우  |  청소년 보호책임자 : 권병우(제호 : 이머니뉴스)
보도자료 : bodo@emoneynews.co.kr  |  제휴·업무관련 : nkdmedia@daum.net
Copyright © 2009 이머니뉴스 | (주)엔케이디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이머니뉴스는 인터넷신문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