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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과 전쟁묘사곡 (2)
신승우 기자 | 승인 2017.09.12 12:10

19세기 이전의 전쟁은 어떤 의미를 지녔건 간에, 다소 낭만적인 모습이 다분히 있었던 것 같다. 

예를들어 긴 창과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방패, 그리고 멋진 투구와 갑옷을 입고 날렵한 말위에 앉은 전사의 모습은 전쟁에 임한다는 결의에 찬 모습이 연상되기 전에 일단은 그 모습속에서 석양과 어우러진 멋진 병사의 늠름한 자태(?)와 한편의 결의에 찬 진군시, 전쟁의 참상이전에 피어나는 소박한 싯구하나를 떠올리게하는 낭만적 심상을 먼저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근대적인 무기체계에서의 전쟁도 지금의 무자비한 더티플레이(?)식 전쟁이 아닌, 인간적 배려와 도덕적 자부심으로 뭉친 그 나름대로의 신사도를 발휘하며 무력해진 적에게 인간적 배려를 아끼지 않은 전쟁을 치뤄 왔음은 많은 전쟁사가들이 인정하고 있다.              

(1차대전에 참전한 독일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들. 이들의 모습속에 국가에 대한 충성심, 공군조종사로써의 자부심이 가득차 보인다. 이 시대 유럽각국의 군인들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적대국 군인에대하여 신사도에 입각한 최대한의 생명존중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낭만적 전쟁영웅들이었다. 

전쟁이 갖는 본연의 모습속에 이러한 낭만적인 요소를 찾아낸다는 것은 다소 어순의 불일치가 있을 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나 전쟁도 인간이 하는 것이니 만큼 그들 스스로 폐허속에서 버려지지않은 인간적 가치와 생명존중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다는 점은 무자비하고도 몰인격적 전쟁에 몰두하는 현대전과 비교해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제 이 이야기의 마지막주제와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전쟁을 묘사한 곡중 대표적인 것은 베토벤의 "웰링턴 전투의 승리 (빗토리아 전쟁의 승리)" 전쟁교향곡과 챠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등이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명곡들이다. 
 
이 두곡은 그야말로 실제전쟁에서의 긴박감과 처절함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전쟁의 참상과 승리자의 환호, 패배자의 암울한 시련을 실제에 가깝게 정밀하게 묘사해 낸 빼어난 수작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곡을 작곡한 두 거장들은 작곡되어진 시대의 현상과 동시에 역사적 사실을 듣는 이에게 제시해 줄 뿐만아니라 19세기 초 유럽의 영광과 좌절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진행되는 극적 전개를 담아 선율로 적절하게 표출해내었다고 보여진다. 
 
이에 장엄하고도 극적인 요소가 중복되어 전쟁을 주제로 한 미학적이고도 극명한 주제요소들의 절제된 향연을 가장 정밀하게 표현한 최고의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절한 전쟁을 담고 있으나 곡 흐름의 내면에는 승리에의 도취보다는 전쟁의 참상과 고귀한 생명의 위협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배어져 있으며 결코 과장되지않게 승리에의 쟁취감을 낭만적 기풍의 고귀함으로 승화시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거장의 곡에 역사적 배경과 인물로써 공통적으로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곧 나폴레옹은 베토벤과 챠이코프스키 두 전쟁묘사곡의 제 1주제이며 주인공이고,  이곡의 주제인 승리감을 표현케 한 원인과 결과를 제공하며, 곧 동시대를 통한 역사적 배경의 주인공일 뿐만아니라,  19세기 초 유럽의 역사와 사상, 영광과 좌절, 계몽주의에 입각한 자유사상을 근거로 만연된 유럽의 자존심등 모든 역사와 이에 파생된 사상적 배경을 한몸에 담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베토벤의 웰링턴 전투의 승리 (혹은 빗토리아 전쟁의 승리)는 1813년 교향곡 7번과 함께 초연되었으며 베토젠의 유일한 "전쟁 교향곡"이다. 당시 베토벤은 생애에 있어서 빈에서의 영광으로 꽃을 피울 무렵이었다. 베토벤의 여느 이전 곡들의 초연때 보다도 가장 많은 찬동을 불러 일으켰고 베토벤의 명성은 극에 달할 때 쯤이었다. 
                           
(베토벤과 빈의 영광 "7번교향곡"과 더불어 "웰링턴 전투의 승리"가 초연될 당시, 베토벤은 그야말로 생애 최고의 황금기를 맞고 있었다...)
 
이곡이 초연될 당시의 원제는 <빅토리아 전투와 웰링턴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연주되었고 베토벤이 직접 지휘하였다. 당시 애국주의 시대적배경과 상황에 힘입어 7번 교향곡과 더불어 이곡은 대중들로 부터 찬사를 불러 일으킨 것으로 후세사가들은 전하고 있다.
 
더 깊은 세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것먼저 짚고 넘어가야 겠다...
 
90년대초 무렵 나는 이곡을 도이치 그라마폰 제작의 - 카라얀, 베를린 필 - 음반으로 구입하고 접할 수 있었다. (전면은 베토벤의 "웰링턴 전투의 승리(혹은 빗토리아 전쟁의 승리)"이고 후면은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 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두 곡을 함께 묶어 음반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관행이 이어져 오고 있는 듯하다. 누가 생각했는지 참 좋은 아이디어로 평가하고 싶다..)
 
당시 이 곡의 제목은 지금 이 글을 쓰기위하여 최근에 네이버에서 검색한 정보에서 나타난 곡명과 미세한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내가 알고있던 이곡의 제목은 "웰링턴 전투의 승리" 혹은 "빗토리아 전쟁의 승리" 였다. (당시 기억으로는 어떤자료에 부제로 표시된 것도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네이버 검색결과는 조금 다른 "웰링턴의 승리" 또는 "빅토리아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검색이 되었다. (빗토리아,,빅토리아 미세하지만, 미묘한 표기차이도 잠시 후에 얘기하겠다..)
 
아니, 제목은 그렇다 치더라도 좀 실망스러운 것은 이 곡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우선 제목부터가 기왕에 알려진 곡명과 지금과 미세한 차이가 있을뿐만 아니라 지식인에서 조차 이곡에 대한 질문도 거의 없고 설혹 있더라도 전문가수준 이상의 답변도 거의 없어 보였다.
 
도데체 지금 음악하는 자들은 다들 뭣하고 노닥거리고 있는지 모를일이다. 이 인간들은 명색이 음악교육을 받은 전문가로써의 행세는 뻔질라게 해 댈지언정, - 배우지 않고서는 알수없는 이 전문분야에 높디높은 베일에다 담벼락까지 쳐 놓고서는 - 정말 죽어라고 연구안하고 노력안하는, 한마디로 돈만 죽어라고 써서 대학가고 꼴에 음악한답시고, 예술한답시고, 나대는 식충이들에 국한된 인간들임을 다시한번 보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공부를 안한 탓에 실력은 있을 턱이 없고, 더구나 연구해 놓은게 없으니, 자기들만의 논리와 주장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러하니, 음악을 공부했다는 인간들의 자기생각으로 똘똘뭉쳐진 음악관련 글은 어딜 찾아가봐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뭘하나 알고 싶어도 전문적인 기고문이나 연구논문등이 도데체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참으로 답답할 지경이다.
 
2-30년전 어설픈 지식으로 - 그것도 음악전공자가 아닌 어학전공하는 분들에 의하여 - 번역된 정보들, - 일체의 보완도 없이 면면히 도도하게 이어내려온 전래동화마냥, 첨언 한토씨, 연구되어 보완된 내용 하나없이 처음 그대로 전부 똑같은 내용을 그대로 베껴넣고, 블로거니 뭐니 하면서 " 난 음악 전공하는 예술가입네 " " 난 음대 교수입네 " 하는 그런 부류들인 셈이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21세기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실망만 남겨주는게 이들의 분야이고, 이들의 현실이고 그래서 슬프고 우울하다.
 
1812년 서곡은 가끔씩 연주가 되긴하지만, 이곡은 거의 1년에, 아니 3-4년에 한번 연주 될까말까하는 시연의 희소성은 차치해 두고서라도 최소한 음악 전문가들이 원곡의 곡명 정도는 통일시켜 놔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최초에 이 음반을 구입할 당시부터 가졌던 의문을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 "빅토리아 승리" 인지 "빗토리아 승리" "빗토리아"면 이태리의 "빗토리아 임마누엘 2세"를 존칭하는 의미인지, 아니면 영국의 영광인 빅토리아 2세를 의미하는 것인지,,대체 분간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대영제국의 영광인 빅토리아 대제를 염두한 제목이라면 곡이 발표한 시기와 좀 처럼 맞지가 않는다. 왜 빗토리아 전쟁의 승리인가? 전쟁터지명? - 웰링턴 장군의 승리무대는 워터루 인데,,하여간 현재 나타난 제목만 갖고서는 왜 "빗토리아 전쟁"인지,,혹은 왜 빅토리아가 아니라 빗토리아인지, 가늠 할 길이 없다.
 
곡에대한 감상기를 쓰거나 읽기전에 우리는 이것먼저 바로잡고, 나가보자

신승우 기자  bodo@emone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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