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구현'을 천명하였다. 공정한 사회란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는 사회'라고 정의하면서 공정한 사회야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라고 강조하였다.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들리는 바에 의하면, 당초 대통령은 '정의가 살아있는 공정한 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다가 '공정한 게임의 룰'과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을 의미하는 '공정'의 의미를 희석시키지 않기 위해 '정의'라는 단어를 연설문에서 배제하였다고 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라는 책을 대통령이 휴가 갈 때 챙겼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정의'에 대한 논의가 세간의 관심을 끌다가, 급기야 8.15경축사에서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면서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이른바 '정의'와 '공정'에 대한 논쟁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정의'나 '공정'이 갑작스레 주목을 받을 만큼 전혀 새로운 가치와 이념은 아니다. 무엇이 정의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한 것인지를 일의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지라도 누구나 가슴으로 충분히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 가치이고 선험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통령이 언급한 '공정한 사회'에 대하여 이처럼 관심과 우려를 갖는 것은 대통령과 현 정부의 속내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과 생활공감 정책을 더욱 강화하여 공정한 사회가 깊이 뿌리 내리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국민들에게 약속하였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정부가 앞으로 성장기조를 버리고 분배와 복지위주로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러한 우려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가 급히 진화에 나서 대통령의 복심은 공정과 상생을 강조한 것이지 '분배우선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기회균등과 결과에 대한 자기책임, 어느 것에 중점을 두나?]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준다"라는 것과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진다"라는 입장가운데, 어느 것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대통령이 구상하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사회구성원들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어 사람들의 생각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기회균등이란 특정의 계급이나 계층에게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라는 소극적 의미로 이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기회균등의 진정한 의미는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적 배려를 해야 하는 적극적 의미라고 해석한다. 기회균등을 적극적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들 간에도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에 대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또 다시 커다란 인식의 차이를 보인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과 분배를 우선시하는 입장과 사회안전망의 확충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인프라 지원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포퓰리즘적 분배위주정책, '공정한 사회' 아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 기회균등과 결과책임 중 무엇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였을까. 기회균등의 의미는 또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은 "활기찬 시장경제를 위한 규제 개혁, 사교육비 절감을 포함한 교육 개혁,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든든 학자금,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는 보금자리 주택, 소상공인을 위한 미소금융과 햇살론, 각 계층별 맞춤형 일자리 창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정책 등이 공정한 사회를 위한 구체적 실천"이라고 하였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그런데 "시장경제를 위한 규제개혁"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적 지원 또는 분배정책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에 대해 우리들이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친서민'이니 "차상위 계층"이니 하면서 직접 지원과 우선 분배의 대상을 더욱 더 확대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기조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차차상위 계층" 또 그 위의 '차차차 상위 계층"까지 포괄하는 포풀리즘적 복지정책으로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국민복지를 확대하자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칫 몰인정한 냉혈한으로 몰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통령의 친서민정책을 우려하는 것은 '파이'를 키우는 성장 동력이 꺼져버리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정체성과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도 재정지출의 확대에 따른 재정건전성의 악화 때문이었음을 잊었는가. 성장을 통해 분배가 이뤄지는 사회, 중산층이 늘어나는 사회를 구현하는 길이야말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진정한 친서민정책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충고에 대통령은 귀를 기우려야 한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보장되는 '공정한 사회']

우리사회가 유독 빈부의 계층 간 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는 것은 겸손하지 못하고 소외계층의 빈곤 및 박탈감을 배려하지 못하는 승자의 실종된 시민의식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있으나, 이것이 계층갈등을 격화시키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균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의지나 노력의 부족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결과를 모두 정부나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도덕적 해이와 비합리적 적개심이 우리사회에 너무나 만연하고 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승자와 패자, 또는 강자와 약자 등과 같이 이분법적·선동적 편가르기를 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무책임한 선동과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한 정부가 친서민정책을 아무리 표방하여도 계층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 질 것이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의 진정한 의미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보장되는 사회,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지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는 사회"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도 우리들이 믿고 있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기를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윤병철 기자  bodo@emone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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