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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자화상'을 신비평적 시각으로 풀어본다
심지현 기자 | 승인 2017.09.06 12:04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느글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 「자화상(自畵像)」
 

「자화상」은 미당이 시인으로서 인정받기까지 살아온 삶을 스스로 돌아보는 시로서, 시적화자와 미당은 일치한다. 화자는 시의 맨 첫머리에서 ‘애비는 종이었다’는 사실을 파격적으로 밝히며 누군가의 ‘종이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다소 반항적으로 부정하고 스스로를 ‘에미의 아들’로 지칭한다. 화자의 아버지는 ‘달을 두고있는’ 어머니가 먹고 싶다던 풋살구도 구해오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다. 시에 등장하는 ‘대추꽃’이 피는 시기가 5-6월 즈음인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종이라도 ‘풋살구’ 하나쯤을 구해오는 일이야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의 아버지는 풋살구를 구해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돌아‘오지않는’ 사람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화자의 부정적인 감정은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에서 모계쪽인 외할아버지와 자신의 핏줄을 강조하며 그 무게감을 더한다. 필자는 ‘갑오년’에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화자가 동학농민운동과의 연관성을 일정량 이야기하는 것으로 간주했으나, 미당의 시전집 「해일」에서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라는 대목과, 이 시에서도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그다지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누군가의 종이었던 아버지와의 핏줄을 부정하고 ‘스물 세 살’이 된 화자에게 세상은 ‘부끄럽기만 한’ 것이다. 때문에 화자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바람은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화자가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 혹은 시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불효자식인 화자에게서 ‘어떤 이는’ ‘죄인을 읽고가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천치를 읽고’간다. 이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화자의 어린시절을 의미한다. 그러나 화자는 이러한 세상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매의 자식’이라는 생각에 떳떳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화자의 굳은 신념은 드디어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 결실을 맺는데, 이 날을 위해서 화자는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병든 숫개만양’ 상관하지 않고 달려왔다. ‘나는 왔다.’라는 문장으로 끝맺은 마지막 연은 이러한 화자의 자부심을 단단한 어조를 통해 전달한다. 따라서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화자가 지금껏 자신의 핏줄을 부정하면서까지 살아 온 인생이 집약된 ‘몇 방울의 피’가 항상 ‘섞여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정주의 아버지는 친일파 김성수의 고용인이었고, 비교적 많은 돈을 받았다고 한다. 필자는 1연의 ‘손톱이 까만’과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에서 종 노릇을 한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화자의 유년시절 또한 궁핍했음을 추정했으나, 이러한 시인의 가정배경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 구절들은 화자의 유년시절을 단순히 회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시인은 아버지가 남의 집의 고용인 처지에 있었던 현실에 대해서 어느정도 불만과 자괴감이 있었던 것 같고, 더욱이 친일파 김성수를 위해 ‘달을 둔’ 어머니와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가 ‘밤 늦게’까지 기다리고 있음에도 ‘오지않는’ 아버지를 원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나아가 화자의 친일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화자는 친일파 집안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핏줄을 부정하며 민족정신을 드러냈기에 ‘뉘우치지’않을 것이라고 천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워지지 않는 친일의 핏줄에 대한 뼈아픔은, ‘병든 숫개’로 시인이 자신을 형상화한 대목에서 드러나지만, 이는 동시에 결국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는 달리 헐떡거리면서도 시를 위해 돌아온 화자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다.

심지현 기자  bodo@emone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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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 사회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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