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관치금융 시대로 회귀하나

감독권을 여타 목적을 위해 오남용하는 것이 바로 관치금융
적법절차 통해 선출된 KB금융 회장후보를 사퇴시키는 게 금융선진화?
국회와 감사원이 관치금융 실태 조사하고, 책임추궁 나서야

1. 지난 12월 3일 KB금융지주의 회장 후보로 선출되어, 내년 1월 7일 열릴 임시주주총회에서 선임될 예정이었던 강정원 현 국민은행장이 오늘(31일) 돌연 회장 후보직에서 사퇴하였다.

강정원 행장의 회장 후보 사퇴는 KB금융지주 회장에 다른 사람을 선임하고자 했던 정권실세와의 마찰, 그리고 이에 따른 감독당국의 강도 높은 표적 검사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모든 국민과 국내외 투자자들을 경악케 한다.

물론 금융회사의 경영실태 내지 임원의 적격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권의 발동은 감독당국의 고유권한이다. 그러나 낙하산 인사와 같은 여타의 목적을 위해 감독당국의 권한을 오남용하는 것을 두고 바로 관치금융이라고 하는 것이다.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이루겠다고 공언한 이명박 정부 하에서 여전히 1997년 외환위기 이전의 관치금융의 악습이 횡행하는 것 자체가 한편의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금융회사 경영진이 장기적 안목의 경영전략을 구사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의 금융시장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감독당국 스스로가 관치금융의 악습을 치유할 의지 및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이상, 국회와 감사원 등이 관치금융의 실태를 엄정하게 조사하고, 관련자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2. KB금융지주의 주인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주주들이다. 청와대도, 감독당국도, 정부의 그 어떤 부처도 KB금융지주의 이사회가 관련 법령과 회사 정관에서 정한 적법 절차에 따라 선출한 회장 후보를 사퇴시킬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특정 인사를 회장 후보에 선출하게 하여, 그를 회장 자리에 앉힐 권한은 더더욱 없다.

그러한데도 정권 실세의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 개입설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되어 후보군을 추릴 때부터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강정원 행장은 보이지 않는 정권 실세가 추천한 인사가 아니었기에, 회장후보추천위원회 단계에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왔으며, 결국 오늘 감독당국의 전방위적인 사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후보 사퇴 의사를 밝히게 된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들이 감독당국 개입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회장 후보 선출 과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강정원 행장과 일부 사외이사들의 사생활까지 들춰내는 검사권 오남용을 통해 사퇴 압력을 가했다면, 이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관치금융이다. 정부가 단 1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은 민간기업의 CEO 선출 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현행 법률은 어디에도 없다. 이를 금융감독권의 정당한 행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작태에 불과하다. 감독당국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3. 금융회사 CEO와 이사회의 리더십을 무너뜨리는 관치금융이야말로 한국 금융산업 발전의 최대 장애물이다. 관치금융 하에서는 CEO의 장기적 경영전략도, 이사회의 견제기능도 무력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자신을 시장경제주의자라고 칭하는 이들을 많이 목도할 수 있는 현 정권에서 ‘관치금융’ 논란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감독당국이 금융회사의 건전성 유지와 금융시장의 안정성 제고라는 본연의 업무는 내팽개치고 자칭타칭 실세라고 불리는 사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인지, 청와대와 정부는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자정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면, 국회와 감사원이 나서서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의 사퇴 배경에 대한 진실을 명백하게 밝히고 관련자에 대해 책임을 물아야 할 것이다.

경제부  bodo@emone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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